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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대한 새로운 앎

2024년 03월 15일 10:08

수도회 조회:37

"그러나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요한 7,27)

사순 제4주간 금요일(2024.3.15)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그분께서 갈릴래아 출신이고, 그분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 관계에서도 가장 위험할 때가 그 사람에 대해 잘 안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때입니다. 잘 안다는 생각이 상대방을 헤아리려는 마음을 사라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익숙함 때문에, 그분을 잘 안다고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앎을 중단하게 됩니다. 성당은 항상 다니고 있지만, 신앙생활은 항상 하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하느님의 뜻과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하는 불행한 신앙인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요한 7,30). 악의 방식은 '제거'입니다. 마음을 열고 알아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음 안에서 답이 내려지고, 그 답과 다를 경우에 '제거'하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포용과 수용, 이해와 다가감을 절대로 선택하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은 제1독서에 나오는 악인들의 모습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의인이 정녕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하느님께서 그를 도우시어, 적대자들의 손에서 그를 구해 주실 것이다. 그러니 그를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해보자....자기 말로 하느님께서 돌보신다고 하니,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지혜 2,18-20).

들음은 끊임없이 하느님께 대한 새로운 앎을 우리에게 줍니다. 우리 믿음이 악의 지배에 갇혀 있지 않도록,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유다인들처럼 예수님을 없애버리는 믿음을 갖지 않도록,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재덕 베드로 신부, 오늘의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