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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투사 천주의 성요한’을 읽고(변**)

2020년 10월 26일 15:51

주경호 조회:944

사랑의 투사 천주의 성요한을 읽고

 

변치문 사무엘 형제

 

 

 시다데 성인의 삶의 일대기에 나의 삶을 비춰 보기

 

 사도직을 수행하기 전 시다데의 일생을 따라가면서 나의 일생도 겹쳐서 생각했다. 그는 가슴 속에 뜨거운 소명감을 느끼면서도 막상 어떻게 주님의 일을 하야할 지 몰라 방황했었고 그 전에는 자유에 대한 열망으로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신세로 살아왔다. 나 또한 회심하기 전에는 세상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자 했지만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 지 몰라 세속적인 가치를 얻고자 내달려왔었다. 회심 후에는 성인처럼 주님을 섬기는 일에 소명을 느꼈지만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주님의 인도를 청하며 지냈었다.

 

자유를 찾아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시절

 

성인은 사도직을 수행하기 전까지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아왔다. ‘자유를 찾아 정처없이 떠도는 성인의 삶을 보며 주님 품을 떠나 가야할 곳을 알아보지 못하고 정처없이 떠도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 역력하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탐구하기 전부터 우선은 세상이 만들어 놓은 속박에 굴레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추구했다. 마음속으로는 자유를 갈망했지만 막상 자유가 무엇인지 의미하는 바를 모르고 그 것을 어떻게 이룰지조차 몰랐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사회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되길 원하면서도, 사회적인 성공을 하면 자유로워질 것이라 착각하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내달리곤 했다. 시대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길 갈망했지만 정작 그 패러다임에 갇혀 잘 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주님을 섬기는 일에 소명을 느낀 성인의 모습 (본격적인 사도직 수행 전까지)

 

 일전에는 성인들이라면 예언자들처럼 주님의 계시를 듣고 자신의 소명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성인의 일생을 보면서 보편적인 성소를 다시 깨달었다. 성인조차 한때는 자유에 대한 개인적인 갈망과 종교적인 열성 사이에서 고민했었다. 특히 아프리카로 여정을 떠나는 모습이 그러하다. 그후에 성인은 주님을 섬기겠다는 뜨거운 소명감을 느끼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황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여정에 이미 와 계서 인도하고 계셨다.나의 일생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의 방법으로 자유를 갈망하였었지만, 회심 후에는 하늘나라의 방법으로 그것을 이뤄보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러나 주님을 섬기겠다는 열망 중에도 잘 못된 길로 가서 스스로 수렁에 빠지기도 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깨닫지 못하고 방황하던 때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는 주님의 이끄심은 언제나 있었지만, 깨닫지 못해 마음이 불안하거나 방황할 때가 많았던 것 같다.

  

   나도 사랑의 투사가 될 수 있을까?

 

   개인적인 회심 후에 주님을 섬기며 살고 싶었다. 복음의 완덕을 이루기 위해 세상의 방법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과감하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동참해야 한다고 소명을 느꼈다. 그 후 성소의 길을 걸었고, 이웃 사랑에 대해 최근까지도 계속해서 식별을 청하고 있었다. 의심이 들 때도 많았지만 시다데 성인의 삶 또한 우리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용기를 얻는다. 성인은 아빌라 신부의 강론을 듣고 회심하기 전후로 아프리카에서 한 가족을 부양하기도 하고 책 장사를 하며 보내기도 하고 정신병원에 수용되기도 한다. 이 모든 일이 천주의 성요한으로 할 일과 당시에는 아무 상관없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시다데 성인을 성소의 길로 부르고 계셨던 주님의 음성이라 생각한다. 그가 자발적으로 원해서 체험한 것보단 주님의 인도에 점점 안착하여 십자가를 지는 좁은 길까지 도달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의 사도직은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주님 안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처럼 주님께서 인간을 먼저 부르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인간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본다. 과연 나는 내 삶에서 그 부르심에 응답했는 지 잘 식별했는지 성찰해본다. 결국은 성인처럼 여러 과정을 거처야 성소에 대한 식별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전까지 그저 성인의 삶을 본받아 계속해서 간절하게 주님의 인도를 청하는 기도를 하며 지금의 삶을 보내야하겠다. 그래야만 때가 왔을 때 성인처럼 사랑에 투신하는 사랑의 투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